
며칠 전 CU 편의점에 갔다가 빵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던 ‘리센느 빵’이었습니다. 워낙 구하기 어렵고 금방 품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어? 여기 하나 있네?’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이 빵을 살 수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건 예약된 상품이에요.” 자세히 보니 빵에는 이미 판매할 수 없는 예약 상품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빵 하나를 예약해서 사는 시대가 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아들과 함께 포켓몬빵을 찾아다니던 때였습니다.
1. 포켓몬빵 찾아다니던 엄마, 이번에는 리센느 빵을 만났습니다.
포켓몬빵 열풍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 역시 아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 아들이 포켓몬빵 안에 들어 있던 ‘띠부씰’을 모으고 싶어 했습니다. 원하는 띠부씰을 얻으려고 편의점에 가면 빵이 없고, 다른 편의점에 가도 품절이었습니다.
어디에 몇 시쯤 물건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고, 빵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빵을 찾아다녔던 이유가 정말 빵이 특별히 맛있어서였을까요? 물론 빵을 사서 먹기는 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포켓몬 캐릭터와 띠부씰을 모으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편의점에서 다시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포켓몬이 아니라 K팝 걸그룹 리센느였습니다.
멤버들의 취향을 담은 빵이 출시되고 포토카드가 들어갑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제품을 찾고 포토카드를 모읍니다.
포켓몬빵이 캐릭터 → 띠부씰 → 수집 → 재구매였다면, 지금의 아이돌 컬래버 상품은 아이돌 → 포토카드 → 소장 → 인증 → 재구매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에는 어딘가 닮은 점이 있습니다.

2. 불경기라는데 왜 어떤 빵은 없어서 못 팔까요?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경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장사가 너무 안된다입니다.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줄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한쪽에서는 소비가 줄었다고 하는데 또 한쪽에서는 빵 하나를 구하지 못해 예약을 하고 기다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이제 소비자들이 단순히 ‘물건’만 구매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센느 빵도 빵 자체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편의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름이 붙고, 멤버의 취향과 이야기가 들어가고, 포토카드가 더해지는 순간 조금 다른 상품이 됩니다. 팬들에게는 빵 하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스타와 연결되는 작은 경험을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SNS 시대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빵을 구하면 사진을 찍습니다. 포토카드를 열어보고 인증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유튜브 등에 올립니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사람이 궁금해서 편의점을 찾아갑니다.
기업이 광고비를 들여 일방적으로 제품을 알리던 방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소비자가 구매자인 동시에 자연스럽게 홍보자가 되는 셈입니다.
3. BTS에서 리센느까지, K팝은 음악만 파는 산업이 아닙니다
K팝의 경제적 영향력을 이야기할 때 BTS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BTS를 통해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된 해외 팬들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노래가 좋아서 관심을 가졌겠지만 그 관심이 한국 음식으로, 화장품으로, 패션으로, 여행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 와보고 싶어 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갔던 장소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노래 한 곡에서 시작된 관심이 한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런 팬덤의 힘은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편의점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빵과 음료, 라면, 과자 같은 평범한 상품에도 K팝이 결합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소비자가 생깁니다.
편의점에 빵 하나를 사러 갔다가 음료도 사고 다른 상품도 함께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해외 팬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교통과 숙박, 음식점, 쇼핑 같은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K팝을 단순히 ‘연예산업’이라고만 부르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곳에는 소비가 생깁니다.
그 소비가 모이면 결국 하나의 경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K컬처는 이미 우리 일상과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소녀시대의 시대와 지금의 걸그룹은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사랑받은 걸그룹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세대에게는 소녀시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노래가 나오면 TV에서 보고 따라 부르고, 광고에서 만나고, 오랜 시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K팝 걸그룹이 활동하는 환경은 그때와 또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TV만 잘 나온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직접 만납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콘텐츠 하나가 순식간에 해외로 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영상을 올리고, 또 다른 사람이 따라 하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콘텐츠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SNS는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돌의 영향력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패션, 화장품, 음식, 편의점, 관광까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5. 대기업만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 경제를 이야기하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산업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이런 산업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하지만 요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 꼭 공장이나 첨단 기술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고, 콘텐츠를 만들고,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연습해 온 젊은 아티스트들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두가 스타였던 것은 아닐 겁니다. 수없이 연습하고 무대에 서고, 자신을 알리고, 팬들과 소통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가 어느 순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소비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젊은 세대에게도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꼭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쌓아가는 힘 역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6. K컬처의 힘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K컬처라고 하면 거창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의점 진열대에 놓인 빵 하나에서도 말입니다. 한 아이돌의 이름이 붙은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편의점을 찾아갑니다. 누군가는 포토카드를 모으고, 누군가는 SNS에 사진을 올립니다.
그것을 본 해외 팬이 한국의 편의점 문화를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소비 하나가 또 다른 관심으로 연결됩니다. 불경기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 요즘, 이렇게 새로운 소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편의점과 식품업체에는 새로운 매출이 생기고, 관련 상품과 콘텐츠가 만들어집니다. 문화가 경제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요?
한번 더 짚어보기
예전에는 아들과 포켓몬빵을 찾아 편의점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때는 빵 안의 작은 띠부씰 하나가 그렇게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CU에서 ‘예약 상품’이라는 표시가 붙은 리센느 빵을 만났습니다.
포켓몬에서 K팝 아이돌로 대상은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이야기, 경험까지 함께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불경기라고 모든 소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새로운 소비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는 K팝이라는 강력한 문화 콘텐츠가 있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를 알리는 것이라면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제품을 먼저 떠올렸지만, 이제는 노래와 춤, 드라마와 영화, 음식과 뷰티가 한국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빵 하나.
사려고 했지만 예약된 상품이라 결국 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빵 하나를 보면서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화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소비가 생기고, 그 소비가 모여 또 하나의 경제가 되는 것 아닐까요?
참고자료
연합뉴스|CU, 리센느 빵 출시 나흘 만에 10만 개 판매
연합뉴스|CU, 걸그룹 리센느 협업 베이커리 5종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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