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일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었는데 평소 먹는 것을 꽤 가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 편의점 음식을 참 좋아하더군요.
저 역시 먹거리를 조금 가리는 편이라 한국에서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튀김류를 자주 사 먹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따라 일본 편의점에 들어가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침이면 유부초밥이나 주먹밥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나와 있었고, 롤케이크나 슈크림이 듬뿍 들어간 디저트도 맛있었습니다. 추운 날 편의점에서 먹었던 따뜻한 어묵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일본 여행의 작은 재미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다시 간다면 유명한 맛집뿐 아니라 편의점에도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편의점을 보면 그때 일본에서 느꼈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나라 편의점도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느낍니다. 특히 요즘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빵’입니다.
연세우유 크림빵부터 포켓몬빵, 최근에는 민음사빵과 리센느빵까지. 요즘 편의점에서는 그야말로 ‘빵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다 보니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요즘 편의점은 빵 회사가 만든 빵을 가져다 파는 곳에 그치지 않습니다. 편의점 회사가 직접 어떤 빵을 만들지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1. 연세우유 크림빵, 빵을 사러 편의점에 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CU에 가면 크림이 가득 들어간 빵이 그렇게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아들이 “이 빵 맛있다”며 사 오곤 했는데, 어떤 날은 CU에 갔더니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며 가져온 적도 있습니다.
바로 CU의 ‘연세우유 크림빵’ 시리즈였습니다. 2022년 처음 출시된 연세우유 크림빵은 빵을 반으로 갈랐을 때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이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이른바 ‘반갈샷’을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편의점에 갔다가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연세우유 크림빵 시리즈는 2026년 4월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판매량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 빵을 누가 생각해냈을까?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제빵회사에서 만든 빵을 CU가 가져다 판매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상품기획자, 즉 MD가 상품을 기획하고 연세우유 등과 협업해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보통 제빵회사 → 빵 생산 → 편의점 판매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편의점 → 소비자 취향 분석 → 상품 기획 → 브랜드·제조사와 협업 → 편의점 단독 상품 출시라는 방식이 생긴 것입니다. 편의점이 단순히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곳에서 히트상품을 직접 기획하는 곳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2. 포켓몬빵, 빵에 ‘수집하는 재미’를 넣었다
편의점 빵 열풍을 이야기할 때 포켓몬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2년 포켓몬빵이 다시 출시됐을 때 빵을 구하기 위해 여러 편의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가 빵의 맛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빵 안에 들어 있던 포켓몬 캐릭터 스티커, 이른바 ‘띠부씰’ 때문이었습니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빵을 사고, 서로 교환하고, SNS에 인증했습니다. 여기서 편의점 업계는 중요한 소비 심리를 확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빵만 사는 것이 아니라 빵에 들어 있는 ‘재미’도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3. 출판사가 빵을 만든다? 민음사빵의 등장
그리고 올해는 더 재미있는 조합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GS25와 출판사 민음사가 협업한 ‘민음사빵’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저도 의아했습니다. “출판사와 빵이 무슨 관계가 있지?”
그런데 바로 이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조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책 제목과 문학 작품의 문구를 활용해 빵 이름과 포장지를 만들고, 빵 안에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과 시집을 활용한 책갈피를 무작위로 넣었습니다.
그러니까 빵 하나를 사면서 책갈피 하나를 모으는 재미까지 생긴 것입니다. 민음사빵은 출시 닷새 만에 10만 개가 팔렸고 이후 누적 판매량이 160만 개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잘 팔리는 빵을 계속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를 마무리한다는 것입니다.
4. 160만 개나 팔렸는데 왜 없앨까?
보통 장사를 생각하면 잘 팔리는 상품은 계속 파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편의점의 신상품 전략은 조금 다릅니다. 한정된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판매해 화제를 만들고, 소비자가 익숙해질 즈음 새로운 상품과 협업을 내놓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금 아니면 못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계속 같은 히트상품 하나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히트상품을 계속 만들어 편의점을 찾게 만드는 것, 이것도 요즘 편의점 ‘빵 전쟁’의 중요한 전략입니다.
5. 이번에는 아이돌이다, 리센느빵
CU에서는 최근 걸그룹 리센느와 협업한 ‘리센느빵’도 선보였습니다. 옥수수 크림빵, 메론빵, 시나몬롤 등 여러 종류를 출시하고 제품에는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무작위로 넣었습니다.

포켓몬빵까지 함께 놓고 보면 요즘 편의점 빵의 공식이 보입니다. 맛있는 빵 하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모으는 재미’를 함께 넣고 있는 것입니다.
6. 편의점들의 ‘빵 전쟁’,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다

이번에 편의점 빵을 찾아보면서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편의점을 여러 회사가 만든 제품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점 회사가 직접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합니다.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어떤 캐릭터가 인기인지, 어떤 아이돌에게 팬덤이 있는지, 어떤 상품이 SNS에 올렸을 때 재미있는지까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식품회사뿐 아니라 우유 브랜드, 캐릭터 회사, 출판사, 아이돌과도 손을 잡습니다. 결국 요즘 편의점들의 ‘빵 전쟁’은 단순히 누가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느냐의 경쟁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먼저 상품으로 만들어내느냐의 경쟁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편의점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진열대가 아니라 MD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빵이 우리를 편의점으로 불러들일까요? 편의점들의 ‘빵 전쟁’이 조금 재미있어지는 이유입니다.
[참고자료]
- 연합뉴스, CU 연세우유 크림빵 누적 판매량 관련 보도
- 이데일리, 민음사빵 판매 및 편의점 히트상품 전략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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